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구조적 실험과 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두 개의 유사한 이야기를 반복하면서도 아주 미묘한 차이를 통해 인물 간 감정의 흐름과 관계의 변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본 리뷰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연출 특성과 미학적 요소를 중심으로, 영화 속 반복 구조가 어떤 감정적·심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분석하고자 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시선: 반복 속의 진실을 말하다
홍상수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대중적인 흥행보다는 자신의 창작 철학과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하며 일상과 관계와 인간 내면의 흐름을 탐구하는 영화들을 선보여 왔습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그가 2015년에 발표한 17번째 장편영화로, 당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거의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주인공 춘수가 화가 희정을 만나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그때’는 그저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현실에서의 진심’과 ‘후회와 가식의 기억’을 대조하는 장치로 읽힙니다. 홍상수 감독은 이런 반복 구조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작은 변화가 인물의 삶과 관계에 어떤 파장을 불러오는지를 관찰하게 합니다. 홍상수 영화의 특징인 고정된 카메라와 줌 인/아웃 중심의 연출, 그리고 비전문 배우와 자연스러운 대사 처리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감독 본인이 실제 삶에서 겪은 일과 고민들이 영화에 투영되며 작가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납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반복적 구조 안에서 인물의 작은 선택과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을 통해 진정성의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정서적 울림을 경험케 합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장면 속 관계의 흔들림
영화의 배경은 수원입니다. 도시는 특별한 설명 없이 마치 일상 속 배경처럼 등장하지만, 이 배경이 주는 정서적 무게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카페, 갤러리, 식당, 술집 등은 이들의 감정이 오고 가는 공간이며 일상의 공간이 곧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는 무대가 됩니다. 주인공인 영화감독 '춘수'는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움과 불안함, 그리고 어떤 막연한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화가 '희정'과의 대화는 무척 일상적이게 느껴지지만 대사 하나하나에 숨겨진 진심과 오해, 그리고 욕망이 쌓여갑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춘수가 자신의 본심을 감추거나 과장하면서 관계에 금이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희정에게 칭찬을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나타나고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불쾌한 마무리를 맞이하게 됩니다. 반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춘수가 좀 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희정 역시 그에게 마음을 여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같지만 다른’ 두 이야기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감정의 미묘함을 더욱 깊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특히 인물들의 대화는 진심과 가식이 혼재된 감정의 줄타기를 보여주면서 영화 내내 반복되는 술자리, 어색한 침묵, 갑작스러운 고백 등은 현실 속 인간관계의 민낯을 보여주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홍상수는 대사를 통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인물의 뉘앙스와 태도를 통해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받을 수 있는 ‘해석 중심 영화’로도 평가받습니다.
반복과 차이: 진심의 순간이 만드는 변화
이 영화에서 반복은 단순한 내러티브 구조를 넘어서는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같은 인물과 같은 대사, 그리고 같은 배경이지만 등장인물의 말투와 시선, 그리고 말의 순서와 표정의 뉘앙스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됩니다. 이로써 영화는 "인간은 순간의 선택과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할 수 있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즉, '진심이냐 아니냐'는 단순한 구분이 아닌 말의 무게와 행동의 진정성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춘수의 태도가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들고 그의 허세와 거짓말은 결국 감정적인 거리감을 낳습니다. 반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동일한 상황에서도 그가 조금 더 겸손하고 정직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희정과의 교감이 가능해집니다. 관객은 ‘같은 이야기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라는 점에서, 인간관계가 얼마나 유동적이고 섬세한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영화의 제목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일종의 ‘관점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어떤 선택이 옳았을지 모르지만 시간과 맥락이 달라지면 그 선택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감독은 이 과정을 반복적 서사와 극도로 절제된 연출로 풀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삶의 순간’을 되짚어보게 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관계의 본질을 통찰하게 만드는 ‘미러링 서사 구조’를 통해 관객의 능동적인 감상과 해석을 유도합니다. 단순히 감정을 소비하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자신의 과거 관계나 말,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구조적 장치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본 작품은 단순한 예술 영화가 아니라,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은 ‘심리적 에세이’와도 같습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홍상수 감독의 독창적인 서사 구조와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감정의 진실을 탐색한 영화입니다. 반복된 이야기 속에서 인물의 사소한 선택이 어떻게 결과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삶의 여러 순간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반복과 차이 속에 숨겨진 진심의 무게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반드시 감상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단 한 번의 관람보다, 두 번, 세 번 볼수록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