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개봉한 영화 ‘터널’은 단순한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무너진 터널 속에 갇힌 한 남성의 고립된 생존기를 다루면서도, 그 이면에는 정부의 위기 대응 시스템, 언론 보도의 방향성, 그리고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재난이 개인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주는지, 그 재난에 대응하는 시스템은 얼마나 인간적인지를 질문하며, ‘터널’은 2024년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뼈아픈 현실을 되짚는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터널’의 배경과 줄거리, 배우들의 역할 분석, 관전 포인트까지 깊이 있게 살펴본다.
1. 재난과 고립, 현실을 기반으로 한 줄거리
‘터널’은 대한민국 어딘가에 위치한 터널이 무너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이정수’(하정우)는 자동차 영업팀장으로,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중 새로 개통된 터널을 지나가다가 갑작스러운 붕괴 사고를 당한다. 차는 파편에 깔리고, 그는 어둡고 협소한 공간에 홀로 갇힌다. 가지고 있는 것은 휴대폰 배터리 78%, 생수 두 병, 딸을 위한 생일 케이크 하나뿐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구조적으로 매우 치밀하다. 영화는 이정수가 터널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와 동시에, 외부에서 벌어지는 구조 활동, 언론의 보도, 정부의 대응, 국민 여론 등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준다. 특히 터널 외부의 구조본부를 중심으로 한 ‘보여주기식 대응’, 정치적 책임 회피, 공정 논리로 포장된 구조 중단 논쟁 등은 단지 영화 속 장치가 아닌, 현실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읽힌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정수의 생존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정부는 ‘두 번째 터널 공사’를 이유로 구조 활동 중단을 결정한다. 가족과 언론, 그리고 일부 구조대원만이 그의 생존 가능성을 믿고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은 관객에게 “한 생명을 구조하는 것이 시스템보다 덜 중요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정수가 처한 고립이 단순히 물리적 갇힘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방치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터널은 곧 사회이며, 그 속에 갇힌 개인은 비인간적 시스템 아래 놓인 우리 자신일 수 있다.
2. 배우들의 열연과 역할 분석
‘터널’의 힘은 배우들의 내면 연기에 있다. 특히 하정우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거의 90% 이상을 독점하며 고립, 공포, 희망, 절망을 반복하는 인간의 심리를 표현해 냈다. 그의 연기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본능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하정우가 연기한 이정수는 단지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 노력하며, 구조대와의 무전에서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감정이 하나의 인물 안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며, 관객을 그의 심리 속으로 끌어들인다. 정수의 아내 세현 역의 배두나는 외부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가족의 절절한 심정을 대변한다. 그녀는 감정적인 폭발보다는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아픔과 분노, 희망과 체념을 오간다. 특히 “지금도 살아 있어요. 당신들이 못 구하는 거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응축한 명대사로 남는다. 또한, 구조대장 대경 역의 오달수는 구조 현장의 냉정함과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조직의 입장과 인간의 도리 사이에서 갈등하며, 때로는 자신의 직업적 한계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만 끝까지 정수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캐릭터는 이성적 판단과 인간적 연민 사이에서 고민하는 구조대원의 현실을 상징한다. 세 명의 배우는 각자의 자리에서 극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 감정을 표현하며, 단순한 재난 영화의 틀을 넘어 심리극의 깊이를 더했다.
3. 관전 포인트와 2024년 현재의 의미
‘터널’은 2024년 지금 다시 보면 더욱 날카롭고, 뼈아프게 다가온다. 단순히 누군가 갇히고 구조되는 스토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이 한 사람의 생존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되묻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 시스템 vs 생명
영화는 터널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논리로 구조를 포기하려는 정부의 입장을 조명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비용, 시간, 국가 이미지 등이다. 반면 이정수라는 한 개인은 그 논리의 희생양이 된다. 이 대립은 곧, 사회가 시스템을 위해 존재하느냐, 인간을 위해 존재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 언론과 여론의 변화
처음엔 정수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희망적 보도를 하던 언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 지연에 대한 비판, 정부 대응에 대한 여론몰이, 그리고 피해자 가족에 대한 ‘피로감’을 조장하는 보도로 방향을 바꾼다. 이 과정은 재난 보도가 어떻게 정치적·상업적 논리에 휘둘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영화는 조용히 계층 문제도 건드린다. 만약 정수가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고위 공직자나 재벌이었다면, 구조는 과연 중단되었을까? 영화는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의문을 품게 만든다.
▶ 인간다움에 대한 믿음
무엇보다 ‘터널’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구조대장 대경, 정수의 아내 세현, 그리고 정수 본인.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관객에게 무기력한 현실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2024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크고 작은 사회적 재난 속에 있다. ‘터널’은 단지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마주한 질문이자, 지금도 유효한 경고다.
결론: 터널은 단지 무너진 공간이 아니다
‘터널’은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사회 시스템, 지연되는 구조, 외면당하는 인간성, 그리고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세 배우가 만들어낸 섬세한 연기와, 김성훈 감독의 날카로운 연출이 만나 만들어낸 이 영화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도 살아 있어요. 당신들이 못 구하는 거지.”
이 한 줄의 대사는 단지 대사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구조 요청일 수 있다. 영화 ‘터널’, 지금 다시 보면 더 깊이 와닿는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