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면, 박진희 주연의 2000년작 영화 ‘하면 된다’는 개봉 당시 흥행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26년 현재 영화 팬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번듯한 성공담이나 화려한 성장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사는 것’ 그 자체의 의미와 무게를 정직하게 다룹니다.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이 특별한 방식이 아닌 현실적인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이야기는, 오히려 지금의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줍니다. ‘하면 된다’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닙니다. 영화는 이 말을 무겁고, 조용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되새깁니다. 오늘 이 리뷰에서는 박대영 감독의 시선, 박상면과 박진희의 내면 연기, 그리고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겠습니다.
박상면, 웃음을 걷어내고 인생을 껴안다
박상면은 코미디와 조연 이미지로 잘 알려진 배우였지만, ‘하면 된다’에서는 그 모든 틀을 깨고 진짜 '인간'을 연기합니다. 그가 맡은 철수는 학벌도, 커리어도, 재산도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삶에 지쳐 있고, 그러나 그 삶에서 도망치지도 못하는 인물입니다. 이 영화에서 박상면은 기존의 밝은 이미지를 완전히 걷어내고, 굳은 표정과 무거운 몸짓으로 삶의 피로감을 표현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주유소로 출근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일하며, 돌아오면 가족을 위해 말없이 식탁에 앉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그 일상만으로도 관객은 철수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 중반, 철수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면서 보이는 감정선은 특히 인상 깊습니다. 그는 아내와 가족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자존심을 세우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침묵합니다. 그러나 그 침묵 안에는 가장으로서의 무력감, 인간으로서의 자괴감,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책임감이 공존합니다. 박상면은 이 복잡한 감정을 과장 없이 표현해 내며 관객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철수가 허공을 바라보며 “하면 된다…”라고 조용히 읊조릴 때, 그것은 결의가 아니라 자기 암시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무책임한 희망이 아니라, ‘어떻게든 오늘을 넘겨야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다짐입니다. 박상면은 이 한마디로 그 어떤 영웅 서사보다 깊은 인생을 전달합니다.
박진희, 가족의 기둥으로 선 여성의 복합감정
박진희가 연기한 정희는 단순한 ‘가정주부’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한 가족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기둥’이자, 상처받은 여성으로서의 복잡한 내면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정희는 겉으로는 씩씩하고, 때로는 웃으며 가족들을 다독이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지쳐 있습니다. 아이의 교육비 걱정, 남편의 무력함에 대한 실망, 삶의 반복되는 고단함 속에서 그녀는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 애씁니다. 박진희는 이 인물을 오버 없이 섬세하게 연기하며 많은 여성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그녀가 주방에서 혼자 밥을 차리며 울음을 참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됩니다. 그 장면은 아무 말 없이, 단지 눈물과 손동작, 표정만으로 ‘누군가를 위한 희생’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슬픔’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정희는 철수를 미워하지 않지만, 그를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스스로를 다잡고,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매일을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정희가 영웅적인 인물은 아닙니다. 그녀도 화를 내고, 포기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습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다시 일어나는 것은, 그녀가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박진희의 이런 내면 연기는 지금의 워킹맘, 가장 여성, 혹은 청년 여성 관객들에게 여전히 강한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하면 된다’는 말은 그녀에게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는 인물로서 정희는 가장 현실적인 히로인입니다.
박대영 감독의 시선: 묵묵하고도 정직한 삶의 기록
‘하면 된다’는 극적 반전이나 클라이맥스를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그려내는 영화입니다. 그 안에서 진짜 드라마가 피어납니다. 박대영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삶의 밑바닥에서 피어나는 ‘버티는 인간’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합니다. 이 영화는 한국 도시 중하위 계층의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합니다. 반지하 방, 낡은 가구, 작은 식탁, 비 오는 날 젖은 신발… 모두가 이 영화의 중요한 정서적 장치입니다. 또한 감독은 시선의 방향을 인물 중심에 고정하지 않고, 주변 인물들과 공간, 사물에까지 넓게 확장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아침에 길가에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와 정리하는 장면은 단순한 일상이지만, 그의 성실함과 침묵 속 책임감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인물의 내면을 대사나 사건이 아니라, 공간과 행동을 통해 보여줍니다. 이는 2000년대 초 당시에는 드물었던 연출 방식이며, 2026년의 시선으로 다시 보면 매우 섬세하고 선구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갈수록 갈등이 커지지만, 박 감독은 그것을 폭발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처럼, 서서히 스며들게 합니다. 큰 변화 없이도 무언가 바뀐 듯한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조용히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 조용한 마무리가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남깁니다.
‘하면 된다’의 진짜 의미: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기록
‘하면 된다’는 말은 때로는 부담스러운 구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불안정한 고용시장, 치솟는 물가, 양극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낙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하면 된다’는 그런 류의 긍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넘어지지 말자”가 아니라 “넘어져도 일어나자”는, 훨씬 현실적인 다짐입니다. 철수는 실패합니다. 정희도 좌절합니다. 두 사람 모두 특별한 성공을 거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하루를 살아냅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매일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면 된다’는 말은 고무적인 말이 아니라, 자기 암시이자 생존의 기술입니다. 관객은 이 말에 위로를 받기보다, 이 말을 되뇌는 인물들에게서 ‘나와 닮은 누군가’를 보며 울컥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지금 2026년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성공이 아닌, 생존의 이야기. 성장보다 유지의 드라마. 그런 이야기가 필요한 시대에 ‘하면 된다’는 단순한 제목을 가진 이 영화가 다시금 마음을 두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 인생이 조금 고단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이 성공보다는 ‘유지’를 위해 하루를 버티고 있다면 —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세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어 보세요. "그래도… 하면 된다."